나는 누구인가 report

소설 ‘퍼레이드’ 속에 이런 내용이 있다.
요스케가 보는 사토루와 고토미가 보는 사토루, 미라이가 보는 사토루는 각각 다르다. 요스케를 대할 때의 사로투의 역할과 고토미가 보는 사토루의 모습처럼 사토루가 만나는 사람에 따라 그 이미지가 바뀌게 된다. 따라서 어떤 사람도 자신이 본 사토루를 진짜 사토루라 할 수 없는 것이고, 그 누구도 실제 사토루를 본 사람이 없다.

매일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각각의 연출된 사토루는 하루에도 몇 명이다. 그렇다면 사토루 자신은 실제 사토루를 보았을까? 시시각각 달라지는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컨트롤 하는 걸까? 무의식과 의식을 혼용하여 만들어진 자신의 모습들 속의 진짜 자신의 모습은 무엇일까.

대학 4년간 너는 누구냐는 수많은 질문들에 항상 식상한 대답 뿐이었다. ‘열정적인 꿈을 가지고 있다.’ 혹은 ‘도전적이다.’ 어느 자기소개서에서 따온 듯한 이런 문구로 나를 표현하기엔 이젠 너무 지겹다. 이제는 면접관들이 듣고 싶은 말들을 고민해서 입맛에 알맞게, 보기 좋게 쓰고 싶진 않다. 진짜 나는 누구일까? 실제 나는 어떤 모습일까.

오늘 팀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봤다. 영화 속에 이런 내용이 있다.
‘갈가마귀와 책상이 왜 같은 줄 알아?’ 모자장수의 이 물음은 영화 초반부터 계속 이어지다 마지막에 앨리스가 다시 모자장수에게 묻는다. ‘모자장수, 갈가마귀와 책상이 왜 같나요?’ ‘사실, 난 아무것도 몰라.’ 사실, 갈가마귀와 책상은 같지 않다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일 수 있다. 사람들은 팀버튼의 이상한 나라에 대해 무엇인가를 보여줄 것이라 많은 기대감을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그의 영화에선 아주 이상한 무엇인가는 없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답을 원한다. 무엇인가 의미있고, 명확한 답. 아무 상관없는 갈가마귀와 책상이 무엇이 같을까. 무슨 의미일까. 모두가 기대했지만 아무 의미도, 아무 답도 없었다. 사람들은 너는 누구냐, 나는 누구냐, 우린 누구며 무슨 세계냐. 수없이 묻고 대답한다.

결론적으로 난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대답할 수 없다. 내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글로 표현하기엔 수없이 많고 복잡한 단면을 가지고 있다. 단지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이정도의 생각을 이정도의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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